급락 마감 속보 뒤에 다들 놓친 숫자 하나
오늘 오후 4시, 증권사 메신저는 온통 "코스피 -5%"라는 문구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날 조용히 발표된 숫자 하나는 거의 아무도 얘기하지 않더군요. 바로 D램 고정거래가격이 또 한 번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는 소식입니다. 주가는 무너지는데 실적의 뿌리는 오히려 더 단단해지고 있다면, 저는 오늘의 급락을 '위기'보다는 '오해'에 가깝다고 봅니다.
오늘 장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
코스피는 3일 338포인트(5.12%) 내린 6,257.45에 장을 마쳤습니다. 지난주 마지막 거래일 17.91% 폭등했던 것에 대한 되돌림 성격이 짙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8.76%, 8.79% 급락하며 지수를 끌어내렸고, 외국인은 2조8천억원, 기관은 1조9천억원을 순매도했습니다. 반면 개인은 홀로 4조6천억원을 사들이며 반등에 베팅했습니다. (연합뉴스 보도)
같은 날 삼성전자의 외국인 지분율은 46.70%로 2009년 금융위기 직후 이후 최저 수준까지 내려갔습니다. 반면 코스닥은 레버리지 규제 완화 기대감 속에 2.44% 오르며 2거래일 연속 강세를 이어갔습니다. (연합뉴스 보도)
이런 와중에 반도체 업황 지표는 정반대로 움직였습니다. 7월 PC용 D램 범용 제품 가격은 전월 대비 14.3% 오른 24달러로 역대 최고가를 다시 썼고, 낸드 가격도 19개월째 상승세를 이어가며 30달러를 넘었습니다. (연합뉴스 보도)
한편 도쿄에서는 미국과 일본이 엔화 매수 공동개입에 나선 사실이 공식 확인되며 엔/달러 환율이 155엔대까지 떨어졌습니다. (연합뉴스 보도)
주가는 팔리고 있는데, 돈은 어디로 가는 걸까요
겉보기엔 그냥 "차익실현"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뜯어보면 자금의 방향이 보입니다.
- 지난주 하루 만에 17.91% 오른 대형주에서 차익실현 매물이 쏟아졌지만, 이건 펀더멘털이 아니라 레버리지·신용융자 청산이라는 '기술적 요인'입니다.
- D램·낸드 가격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는 건, 반도체 회사들의 3분기 실적 전망이 오히려 더 좋아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 외국인은 팔았지만 개인이 4조6천억원을 받아냈습니다 — 매물이 사라진 게 아니라 손바뀜이 일어난 겁니다.
- 코스닥으로의 자금 쏠림은 당국의 레버리지 ETF 규제가 대형주보다 중소형주 수급에 숨통을 틔워준 결과로 보입니다.
- 엔화 강세(미일 공동개입)는 그동안 엔화를 빌려 위험자산에 투자하던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 압력을 키울 수 있는 변수입니다.
그래서 지금, 어디를 봐야 할까요
삼성전자·SK하이닉스
두 종목은 오늘 하루에만 8%대씩 빠지며 지난주 상승분의 상당 부분을 반납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날 발표된 D램 가격은 한 달 만에 14% 넘게 뛰며 역대 최고가를 다시 썼습니다. 주가와 업황이 정반대로 움직이는 이 그림, 낯설지 않습니다. 2016년 하반기에도 반도체 가격 상승 초입에 주가가 먼저 조정을 받았다가, 이후 D램 슈퍼사이클과 함께 두 종목 모두 1년 넘게 우상향한 전례가 있습니다.
저는 이번 하락을 '펀더멘털 훼손'보다는 '레버리지 청산에 따른 조정'에 가깝다고 봅니다. 다만 외국인 지분율이 금융위기 이후 최저로 내려간 건 가볍게 볼 신호는 아닙니다. 외국인 매도가 하루이틀 더 이어지며 지분율이 더 낮아진다면, 이 그림은 깨질 수 있습니다.
코스닥 중소형주
코스피가 흔들리는 사이 코스닥은 2거래일 연속 급등하며 매수 사이드카까지 발동됐습니다.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에 대한 당국의 기본예탁금 인상 대책이 코스닥 자금 이탈을 막아준 영향으로 풀이됩니다. 대형주에서 빠진 돈이 통째로 코스닥에 들어갔다고 보긴 어렵지만, 최소한 '팔아야 할 이유'가 하나 줄어든 셈입니다. 저는 이 흐름이 단기 반등에 그칠지, 대형주 쏠림이 풀리는 신호일지는 아직 확신이 없습니다. 다만 거래대금이 계속 코스닥으로 쏠린다면 무게를 실어볼 만하다고 봅니다. 지금 코스닥은 세일 첫날 몰린 오픈런 인파 같습니다 — 다만 진짜 좋은 물건인지는 며칠 더 지나 봐야 압니다.
엔화 강세 수혜주(항공·수입 업종)
달러당 엔 환율이 164엔에서 155엔대로 열흘 새 5% 넘게 떨어졌습니다. 엔화가 이렇게 빠르게 강해지면, 그간 엔화를 빌려 다른 자산에 투자했던 돈들이 빠르게 되돌아갈 수 있습니다. 원자재·연료를 달러로 결제하는 항공사나 수입 비중이 큰 기업 입장에선 오히려 우호적인 환경이 열릴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변수를 '위험'보다는 '기회' 쪽에 조금 더 무게를 둡니다만, 미국과 일본이 추가 개입을 예고한 만큼 환율 변동성 자체는 당분간 계속 지켜봐야 합니다.
급락장에서 진짜 확인해야 할 한 가지
지금 계좌가 빨갛다고 해서 다 같은 이유는 아닙니다. 지난주 폭등, 이번 주 폭락 — 널뛰기 장세에 마음이 흔들리는 게 당연합니다. 그럴 땐 '주가'가 아니라 '업황 숫자'를 먼저 보시길 권합니다. 그럼 업황 좋은 종목은 무조건 사도 될까요?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오늘처럼 주가와 펀더멘털이 반대로 움직일 때, 결국 시간이 지나면 방향을 정하는 건 숫자 쪽이지만, 그 시간이 며칠일지 몇 달일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 시나리오가 깨지는 조건은 분명합니다 — D램·낸드 가격이 꺾이거나, 외국인 매도가 지분율을 더 끌어내리며 며칠 더 이어진다면, '기술적 조정'이라는 해석 자체를 접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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