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 화재경보기가 울린 하루, 정작 침착했던 건 채권시장이었습니다
오늘 코스피가 10.84% 빠졌다는 숫자만 보면 다들 반도체 탓을 합니다. 그런데 오늘 하루 진짜 돈이 도망친 곳과 조용히 걸어 들어간 곳을 나눠 보면 그림이 좀 다릅니다. 외국인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하루 만에 5조 원 가까이 던졌고, 그 돈의 일부는 채권으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저는 오늘 장에서 진짜 봐야 할 건 지수의 낙폭이 아니라 이 자금 이동의 방향이라고 봅니다.
중국발 뉴스 두 개가 쏘아 올린 매도
코스피는 전날보다 732.09포인트(10.84%) 내린 6,023.66으로 마감했습니다. 역대 두 번째로 큰 낙폭입니다. 코스닥도 7.72% 내리며 700선을 한때 내줬습니다. 양 시장에서 매도 사이드카에 이어 서킷브레이커까지 발동됐습니다. (연합뉴스 보도)
도화선은 중국이었습니다. 중국 최대 D램 업체 창신메모리(CXMT)가 전날 상하이 증시에 상장하며 공모가 대비 465% 넘게 폭등했고, 같은 시각 중국 국영기업이 반도체 노광장비(DUV) 양산에 착수했다는 외신 보도가 겹쳤습니다. 최첨단 EUV 장비보다 여러 세대 뒤진 기술이지만, "중국도 결국 따라온다"는 공포가 밸류체인 전체로 번졌습니다. (연합뉴스 보도)
여기에 엔비디아와 SK그룹의 5천억 달러 규모 협력에서 나온 '순환거래' 논란까지 재점화하면서, 간밤 뉴욕에서 엔비디아(-4.99%), ASML(-5.80%), SK하이닉스 ADR(-7.47%)이 일제히 무너졌습니다. 삼성전자는 13.39%, SK하이닉스는 14.65% 빠지며 국내 증시 하락을 주도했습니다. (연합뉴스 보도)
외국인은 팔고, 개미는 사고, 돈은 채권으로
오늘 자금 흐름을 뜯어보면 세 갈래로 나뉩니다.
- 외국인은 코스피에서 4조9,914억 원을 순매도했습니다. SK하이닉스에서만 3조2,092억 원, 삼성전자에서 1조6,341억 원을 던졌습니다.
- 개인은 정확히 반대로 움직였습니다. 4조3,273억 원어치를 순매수하며 낙폭을 받아냈습니다.
- 같은 날 국고채 3년물 금리는 3.6bp, 10년물은 4.4bp 하락(=채권 강세)했습니다. 위험을 피해 채권으로 들어간 돈이 뚜렷했다는 뜻입니다.
- SK하이닉스 ADR은 공모가(149달러)와 상장 첫날 시초가(170달러)를 모두 밑돌며 143.02달러까지 밀렸습니다. 미국에서도 같은 논리로 돈이 빠졌습니다.
- '공포지수' VKOSPI는 7거래일 만에 반등해 83선을 넘었습니다. 지난달 97까지 찍었던 걸 감안하면 아직 최악은 아니라는 신호로도 읽힙니다.
정리하면, 오늘 장은 '반도체를 팔아 안전자산을 사는' 전형적인 위험회피 장세였습니다. 문제는 그 반도체를 개미들이 받아냈다는 점이고요.
종목으로 보면: 삼성전자·SK하이닉스, 그리고 증권주
삼성전자
13.39% 하락한 22만 원 마감은 2008년 10월 금융위기 당시(-13.76%) 이후 17년 만의 최대 낙폭입니다. 지난달 고점(37만4,500원) 대비로는 41% 넘게 빠졌습니다. 저는 이 숫자 자체보다 '무엇이 훼손됐는가'를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DUV 장비는 아직 연간 생산량이 수십 대 미만, 테스트 단계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즉 실적이 아니라 심리가 무너진 쪽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저는 29~30일 SK하이닉스·삼성전자 실적 발표에서 메모리 이익 전망이 유지된다면, 이번 낙폭의 상당 부분은 되돌려질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SK하이닉스
14.65% 내린 155만 원은 6월 사상 최고가(298만7천원) 대비 48% 이상 조정받은 수준입니다. ADR이 공모가 아래로 내려간 건 국내보다 오히려 미국 쪽 투자자들의 AI 자본지출 피로감이 더 크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저는 SK하이닉스는 실적 발표(29일) 전까지는 변동성 구간으로 보고, 실적에서 장기공급계약과 주주환원 관련 언급이 나오는지를 체크포인트로 두고 있습니다.
증권주
미래에셋증권(-10.80%), SK증권(-10.44%) 등 증권주도 줄줄이 빠졌습니다. 거래대금 자체는 35조 원을 넘기며 오히려 늘었다는 점에서, 증권주 하락은 실적 우려보다 시장 전체의 위험회피 심리에 같이 휩쓸린 결과에 가깝습니다.
개미 입장에서 진짜 무서운 건 따로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저는 오늘 낙폭의 상당 부분이 '숫자 자체'보다 반복된 서킷브레이커가 만든 학습된 공포 때문이라고 봅니다. 극장에서 화재경보기가 울리면, 진짜 불이 났는지 확인하기도 전에 다들 문으로 몰려가는 것과 비슷합니다. 7월 한 달에만 서킷브레이커가 네 번, 사이드카는 23번 울렸습니다. 경보가 반복되면 실제 위험도와 무관하게 사람들은 일단 뛰쳐나가고 봅니다. 그럼 지금 사이드카·서킷브레이커는 안전장치일까요, 아니면 공포를 증폭시키는 스피커일까요? 저는 후자에 가깝다고 봅니다.
이 시나리오가 깨지는 조건은 하나입니다. 29~30일 SK하이닉스·삼성전자 실적에서 메모리 가격과 AI 수요 관련 가이던스가 시장 우려보다 나쁘게 나오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 오늘의 '과매도'는 저평가가 아니라 재평가의 시작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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