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발표 하루 전, 정작 시장은 딴 데를 보고 있었다
내일이면 미국이 새 관세율을 발표합니다. 관세 앞두고 시장이 몸을 사려야 정상 아닌가요? 그런데 오늘 코스피는 4%대 급등하며 7,000선을 다시 뚫었고, 코스닥도 5%대 올랐습니다. 저는 오늘 하루를 보면서 시장이 '관세 리스크'보다 '반도체 호재'와 '역대급 실적'에 훨씬 크게 베팅했다고 봅니다. 관세는 여전히 리스크로 남아 있지만, 그걸 눌러버릴 만큼 강한 재료가 같은 날 동시에 터진 겁니다.
오늘 있었던 일들, 짧게 정리
미국의 10% 글로벌 관세가 24일(현지시간) 만료되면서, 이를 대체할 무역법 301조 관세 발표가 임박했습니다. 강제노동 관련 조사에 따라 한국에는 12.5% 관세가 예고돼 있고, 정부는 작년 합의한 15% 상한선을 사수하려 막바지 총력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다만 반도체는 한미 합의로 무관세가 유지됩니다(연합뉴스).
같은 날 밤 알파벳(구글 모회사)이 AI 인프라에 올해 약 303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히면서 삼성전자(3.65%↑)와 SK하이닉스(4.86%↑)가 나란히 급등했습니다. 외국인은 이 두 종목만 하루 만에 1조6천억원 넘게 사들여 순매수 1·2위를 차지했습니다(연합뉴스).
태양광 업체 OCI홀딩스는 2분기 흑자 전환과 반도체 소재 자회사 실적 개선 소식에 상한가(30%)로 마감했습니다. KB금융은 2분기 순이익 2조원에 육박하며 역대 최대 실적을 냈고, 증권 계열사 기여도가 21%까지 커졌습니다(연합뉴스).
여기에 2분기 GDP 성장률이 예상(0.2%)의 세 배인 0.6%로 나오자, 씨티은행은 8월 한국은행 금리 인상 가능성이 커졌다고 진단했습니다(연합뉴스).
뉴스 다섯 개를 하나로 이으면 보이는 돈의 흐름
따로 보면 관세, 반도체, 실적, 금리가 각각 다른 이야기 같지만 오늘 하루 자금 흐름으로 보면 한 줄로 꿰어집니다.
- 반도체는 이미 무관세로 확정돼 있어, 관세 발표를 하루 앞두고도 외국인 자금이 두려움 없이 삼성전자·SK하이닉스로 몰렸습니다.
- 알파벳의 303조원 AI 투자 발표가 메모리 공급망인 국내 반도체 두 종목으로 그대로 흘러들었고, 이날 외국인 순매수 2조6천억원 중 절반 이상이 이 두 종목에 집중됐습니다.
- GDP 깜짝 성장과 금리 인상 기대는 원화 강세로 이어져 원/엔 환율이 100엔당 900원 아래로, 1년 8개월 만에 최저 수준까지 내려갔습니다(연합뉴스). 원자재·부품 수입 비중이 큰 업종엔 원가 완충 효과가 생깁니다.
- KB증권(영업이익 175%↑), NH투자증권(영업이익 111%↑), KB금융까지 증권가 어닝시즌이 일제히 '역대 최대'로 시작되면서, 실적 기반 매수세가 반도체 밖 금융주로도 번지고 있습니다.
- 다만 관세 불확실성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닙니다. 반도체·자동차·철강처럼 별도 품목관세를 받는 업종은 예외지만, 나머지 중소 수출기업은 여전히 15% 상한이 지켜질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들, 어디에 무게를 둘까
삼성전자·SK하이닉스
이 둘은 오늘 그림의 핵심입니다. 관세라는 악재 앞에서도 반도체만 예외 조항으로 빠져 있다는 점, 그리고 알파벳발 AI 투자 확대가 실제 메모리 수요로 이어질 거라는 기대가 겹쳤습니다. KB증권은 삼성전자를 구글 메모리 공급 점유율 1위, 즉 '구글 AI 생태계 최대 수혜주'로 지목했습니다. 저는 이번 상승에서 반도체 쪽에 더 무게를 둡니다. 다만 알파벳의 2분기 잉여현금흐름이 자본지출 확대로 마이너스 전환했다는 점은 짚어야 합니다. 빅테크의 AI 투자 여력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면 이 랠리도 속도가 꺾일 수 있습니다.
OCI홀딩스
태양광과 반도체 소재, 두 자회사가 동시에 흑자 전환하며 하루 만에 상한가를 찍었습니다. 미국 태양광 프로젝트 매각으로 현금화에 성공했다는 점은 실체가 있는 호재입니다. 다만 하루 30% 상승은 정상적인 재평가라기보다 단기 쏠림에 가깝습니다. 저는 이 종목은 실적 모멘텀은 인정하되, 추가 상승분에는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쪽에 무게를 둡니다.
KB금융
순이익 역대 최대라는 타이틀 뒤에는 두 얼굴이 있습니다. 은행 본업의 순이자마진(NIM)은 1.77%에서 1.74%로 오히려 낮아졌지만, 증권·자산운용 등 비이자이익이 38% 급증하며 이를 메웠습니다. 금리 인상이 현실화되면 NIM엔 우호적이지만 대출 수요는 눌릴 수 있어, 저는 KB금융의 상승 동력은 '은행업'보다 '증권 자회사 실적'에 더 무게를 둡니다.
흥분되는 하루지만, 체크리스트는 남는다
지금 반도체 업종은 세일 마지막 날 몰린 백화점 같습니다. 다들 오늘 안 사면 늦는다는 심리로 몰려들지만, 정작 그 세일이 내일도 이어질지는 아무도 장담 못 합니다. 하루 4%대 급등, 개별 종목 상한가가 겹친 날은 통계적으로도 다음 며칠간 변동성이 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 오늘 같은 날엔 무조건 올라타야 할까요?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내일 발표될 관세 내용이 예고된 12.5%·15% 상한 안에서 마무리되면 오늘의 그림은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반대로 과잉생산 조사까지 겹쳐 15% 상한을 넘는 관세가 확정된다면, 반도체를 제외한 업종 전반에 매물이 쏟아지며 오늘의 랠리가 하루짜리 이벤트로 끝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지점이 이번 시나리오가 깨지는 조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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